그러니까 지금부터 10년전..정도 될거다. 내가 대학교 3학년때 얘긴데.
그해 신입생이 약 300명 정도 들어왔다. 97년부터 학부로 통합된 결과인데.. 문제는 수련회를 가려니 통솔이 힘든거다. 그래서 평소와 다르게 예비역들이 대거 동원되었는데.
거, 예비역이라 하면 기본적으로 수련회때 MT 조교를 맡는게 정석. 4학년 선배가 2,3학년 예비역들 모아놓고 코스를 짜는데 이런 말이 나왔다. 누구 인정사정없이 굴릴 녀석 없냐고. 보통 MT때는 선배들이 많이 봐주기 때문에 그러면 안된다나? 그런데 아무도 손을 안드는 거다. 당연하지, 누가 손을 들겠냐고. 신입생들한테 학기 초부터 미운 털 박힐일 있나. 선배도 그 심정을 알기에 한숨만 푹 쉬고 아무말 못하고 있는데 내가 천천히 손을 들었다.
"일단 닥치고 다 굴리면 되죠? 열외 없이. 쉬는 시간 없이. 대신 조건이 있는데..."
누구든 총대를 매야 한다면 보통 내가 메는게 기본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당연하다는듯이 내가 총대를 맸다. 뭐 미운털 박혀봤자 길어야 1학기. 신입생들이랑 대면할 일도 별로 없었으니 - 나중에 그게 아니게 되지만 - 맘 편하게 임하기로 했다.
자. 이제 MT 타임. 시간은 무려 4시간. 왜냐하면 총 250명 12개조가 참석했기 때문에 코스당 20분씩 할애해서 그렇게 되었다. 자, 첫 조가 온다. 인솔자는 내가 잘 아는 2학년 현역 후배. 내 얼굴을 보더니 확 펴진다. 내가 남자후배들을 좀 잘 챙겨줘서 그랬겠지.
"여기까지 오신걸 환영합니다. 이곳은 어쩌고 저쩌고..."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모자를 푹 눌러쓰고 가볍게 소개를 한 다음 몸풀이로 뜀뛰기를 시켰다. 그정도야 다들 식은죽 먹기.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
"PT 체조 1번 팔벌려 뛰기 50회. 몇회?"
"50회!"
"1의 배수 반복 구호 없습니다. 알겠습니까?"
"?!?!?!?!?"
1의 배수?????
알아들은 사람 제로.
1의 배수 반복구호 없음은 반복구호 자체를 말아야 한다는 거다. 즉, 예령으로만 해야 하는데 이 녀석들이 그걸 알리가 있나. 당연히 1에서 시작하자 마자 걸렸고 어떻게 했느냐...
남녀 할것없이 열심히 김밥을 말고 선착순 달리기에 쪼그려뛰기 100회를 시켰다. 알짤없이.
....끝날때쯤 눈에 독기가 돌더군.
자. 그리고.
12개조 모두 저 관문을 통과하는데 실패했다. 다 죽었단 얘기다. 마지막 팀에선 우는 여자애들도 속출하더라.
쌩깠다.
그리고 MT가 마무리 되고 수련원으로 돌아왔는데 나를 보는 신입생들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솔직히 다른 코스는 다 편하고 재밌었는데 내 코스는 완전 유격이었으니 당연하지.
조교들 모이자 선배가 단상에서 크게 외쳤다.
"조교 레인 앞으로!"
나는 후다닥 달려가서 차렷 자세. 자세 갖춰지자 마자 포복부터 시작해서 얼차려 시작. 즉, 내 조건은 애들 다 보는 앞에서 나에게 얼차려를 줄것 이었다. 안그러면 나중에 뒤가 피곤해지니까. 헌데 나 혼자 하는게 미안했던지 동기들이 우루루 몰려나와서 같이 얼차려를 받았다. 한 5분 받고 나니 온몸은 땀과 먼지 투성이. 그걸로 마무리 하고 예비역들끼리 따로 모여서 고생했다고 서로 치하하고 그렇게 하루를 끝냈다.
뭐, 그날 밤 캠프 파이어 하는데 몇몇 신입생 남자애들이 술 가지고 오긴 하더라. 내가 술을 안마셔서 맛가게 하는데는 실패했지만.
그리고 수련회 후 진짜 한학기동안 여자애들은 내 주위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대신 남자애들은 무지하게 따르더만. 여전히 연락하는 녀석이 있을 정도니.
나도 그런 면이 있었다는 거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덧. 다음 해, 저걸 써먹었는데 그 당시의 기억을 간직한 후배 하나가 예령으로 통과하는 방법을 고안해내서 그 조만 통과를 했다. 그 조는 유일하게 15분 휴식을 얻어냈다. 하지만 이대로 당할수 없는법. 어쨌냐고?
다음 조 부터는 0의 배수는 반복구호 금지로 바꿨다.(...)
다 걸려서 또 다 신나게 굴려 먹었다.(...)
인생 그런거다. 줄 잘서야지(...)